Home > 별, 성장하다 > 멘토링 꿈장학사업

국밥 같은 아이 동우, 세상 앞에
당당히 서다 / 성흥모 멘토(경북공업고등학교 교사), 강동우 멘티(경북공업고등학교 3학년)

같은 사람을 세 번 만나면 ‘인연’이라고 했던가. 성흥모 선생님과 동우의 인연도 그렇게 시작됐다. 첫 만남은 3년 전이었다. 성흥모 선생님이 학교 홍보차 인근 중학교로 설명회를 나갔는데, 학생들 틈으로 머리만 빼쭉 튀어나온 남자아이가 눈에 띄었다. 같은 해 3월, 1학년 반 담임을 맡게 된 선생님은 그때 그 ‘멀대’를 또 만났다. 출석을 부르는데 어디서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하는 녀석이 손을 번쩍 들었다. ‘멀대=강동우’가 머릿속에 새겨졌다. 세 번째 인연은 멘토와 멘티로서의 만남이었다. 그것이 동우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스승으로서의 가장 힘찬 응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흥모 선생님은 새로운 반을 맡을 때마다 같은 다짐을 한다. ‘교사로서 최고의 사명은 아이들과의 소통’이라는 다짐이다. 몸과 함께 마음도 성장하는 아이들에게는 교사의 역할이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성흥모 선생님이 17년째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깨닫고 또 깨닫게 되는 생각이다.

효심이 담긴 소박한 꿈을 가진 아이

성흥모 선생님이 동우와의 인연을 확신한 것은 학생 상담 때였다. 출석을 부르면 언제나 큰 목소리로 대답하던 녀석이 의외로 여러 번의 따돌림을 경험했다는 기록이 있었다. 이상하다 여긴 선생님은 기록부를 뒤져보다가 동우가 조손가정에서 자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부모님은 동우가 7살 무렵 이혼을 하셨고, 바로 친조부모에게 맡겨진 동우는 한 번도 부모를 만나본 적이 없다고 했다.

동우네 할아버지는 아파트 경비 일을 하신다. 할머니는 시각장애가 있으셨다. 때문에 동우네 집은 기초생활수급 지원금과 할아버지의 얼마 안 되는 경비 월급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상황이었다. 선생님은 동우의 이야기를 듣고 서둘러 동우와 함께 삼성꿈장학재단에 꿈장학 신청서를 냈다. 그런데 막상 신청을 해놓고 보니 몇 가지 걱정되는 것들이 있었다. 우선 재단의 취지대로라면 동우에게 ‘꿈’이 있어야 했다. 선생님은 동우를 불러 놓고 물었다.

멘토링 꿈장학사업

동우는 매우 나지막한 목소리로 “할아버지, 할머니가 편안하게 사는 거요”라고 대답했다. 왠지 동우답지 않은 작은 목소리였지만, 고요한 음성에서 동우의 진심이 느껴졌다. 뚜렷하고 거창하진 않았지만, 동우에게는 최우선일 수밖에 없는 꿈이라 생각했다.

멘토링으로 일깨운 ‘자신감’과 ‘성취감’

동우와 선생님은 꿈장학 결과 발표를 손꼽아 기다렸다. 다행히 결과는 ‘선정’이었다. 소식을 듣고 두 사람은 기뻐 겅중겅중 뛰다가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본격적으로 멘토링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동우와 멘토선생님이 뛰어넘어야할 산이 생각보다 많았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동우의 성적이었다. 그동안 동우는 공부와 담을 쌓고 살았던 터라 성적을 올리는 것이 가장 큰 숙제였다. 이에 멘토선생님은 동우에게 공부에 대한 동기부터 부여해 주기로 했다.

멘토링 꿈장학사업일단 한번이라도 동우가 ‘성취감’을 맛보는 것이 중요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으니 각 과목마다 동우가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부터 파악하고 단계별 학습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공부와 상관없이 동우가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는 계기도 필요했다. 멘토선생님은 ‘기술사관학교’ 프로그램이 ‘딱’이라고 생각했다. 동우 역시 호기심과 의지가 그득했다. 그때의 이야기가 나오자 멘토선생님과 동우는 한목소리를 냈다.

다행히도 동우의 기술사관학교 체험은 효과가 좋았다. 프로그램에서 진행된 해병대 캠프 4박5일이 동우에게 ‘끈기’를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동우는 육체적 한계를 극복하는 군대 체험이 나름 적성에 맞았다고 말했다. 멘토선생님은 캠프를 마치고 온 동우의 눈에서 단단한 힘이 느껴졌다고 한다.

동우는 군대 체험을 다녀온 후 인생의 좌우명이 생겼다. ‘죽기 살기로 말고, 죽기로 하자’는 각오였다. 런던 올림픽에 출전한 한 선수가 인터뷰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살기로 생각하고 노력하니 결과가 좋지 않았다”며 “죽을 각오로 연습하니 금메달을 따게 됐다”는 이야길 했단다. 그걸 듣고 동우도 ‘죽을 각오로 살자’고 결심했다.

멘토선생님은 동우의 효성을 보고 ‘근성이 있는 녀석’이라 확신했다. 방과 후에는 짬짬이 할아버지를 도와드리는 모습 때문이다. 동우는 틈이 나는 대로 할아버지가 일하시는 아파트로 출동해 택배와 우편물을 전달하거나, 쓰레기 정리하는 일을 도왔다. 동우는 무릎이 안 좋으신 할아버지가 무거운 상자를 들고 집집을 다니는 모습이 제일 가슴 아프다고 했다.

“한번은 동우가 할머니, 할아버지께 영양제랑 과일을 선물한 일이 있어요. 그때 동우 얼굴이 어찌나 함박미소였던지 잊혀지지가 않더라고요. 교내에서 효행상을 수상하기도 했어요. 복지관에서 장애우들을 돌보는 봉사활동을 할 때도 동우는 굉장히 적극적이에요. 누군가를 도움으로써 자기 존재감을 확인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보통의 아이들은 지저분하고 성가신 일은 하기 싫어하는 경우가 많은데, 동우는 달라요.”

‘사제지간’에서 ‘부자지간’으로

멘토링 꿈장학사업멘토선생님과 동우는 종종 부자지간이냐는 질문을 받는다. 두 사람이 즐겨 가는 국밥집이 있는데, 갈 때마다 주인아주머니가 “아이고, 아들이 참 듬직하게 생겼네”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때문인지 선생님은 동우가 진짜 아들처럼 느껴졌다. 학교에서도 동우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은데, 동우에게 살아가는 방법을 하나하나 가르쳐줄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무엇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동우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진짜 부모가 된 것 같았다.

군대 체험 이후 멘토선생님은 동우에게 정보기술자격시험을 준비하자고 권했다. 기본적으로 취득할 수 있는 시험이라 인생의 첫 성공을 느끼기에는 무리 없는 도전 같아서였다. 결과는 당연히 합격이었다. 동우 스스로도 의지가 있었고, 평소 컴퓨터를 자주 접해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한다.

1학년 2학기가 끝나갈 무렵 동우의 영어 성적이 눈에 띄게 올라 있었다. 멘토선생님의 담당 과목이 영어여서 더 많이 도움을 주셨다. 멘토선생님께 보답하고 싶었던 동우 마음이 멋지게 실현된 것이다. 급기야 동우는 2개월 단기 어학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필리핀에서 한국인 선교사가 저렴하게 운영하는 과정에 동우는 장학금, 지원금 등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어학연수를 계기로 멘토선생님과 동우는 더욱 애틋한 사이가 됐다. 연수기간 동안 멘토선생님은 자주 전화를 걸어 동우의 안부를 묻고, 한국에서 동우가 좋아하는 먹을거리를 사보내시기도 했다.

동우가 필리핀에서 돌아오던 날, 멘토선생님은 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다. 다른 것 보다 동우의 눈빛이 궁금했다. 군대 체험을 하고 돌아왔던 날의 그런 눈빛일까, 영어에는 흥미가 좀 붙었을까, 프리토킹은 해봤을까, 동우의 이야기가 빨리 듣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동우를 보자마자 꺼낸 첫마디는 “너 뭐 먹을래?”였다. 동우는 1초도 안 걸려 “국밥이요!”라고 말했다.

실패해도 괜찮아, 지금부터가 시작이야

그 후로도 두 사람은 자주 ‘국밥집 데이트’를 즐겼다. 그동안 국밥을 몇 그릇이나 먹었을까, 키만 멀대 같이 컸던 동우가 벌써 3학년 졸업반이 됐다. 그리고 멘토선생님과 동우는 요즘 진로 문제를 두고 열심히 고민 중이다. 멘토선생님은 동우가 대학에 진학해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더 하기를 바랐지만, 동우는 하루라도 빨리 취업을 해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편안하게 모시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동우가 그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멘토선생님은 가슴이 아프다. 부모에게 어리광을 부려도 될 나이에 동우는 자신을 힘들게 키워준 할머니 할아버지께 뭐라도 해드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지난 3년간 동우가 일군 것들은 적지 않았다. 가장 신경이 많이 쓰였던 동우의 학교 성적은 이제 중상위권이다. 노트 필기 한번 한 적이 없었던 3년 전에 비하면 굉장한 성과였다. 틈틈이 준비했던 컴퓨터 자격시험에도 합격해 이력서에 넣을 자격증도 이제 2개나 된다. 그러나 멘토선생님이 가장 뿌듯한 일은 동우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된 일이다. 군대 체험이나 어학연수를 통해 홀로서기를 하면서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서는 ‘사나이’가 됐다.

멘토선생님은 동우의 굳은 의지에 한발 물러서기로 했다. 취업에 대한 동우의 의지가 투철하니 멘토선생님도 응원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동우의 첫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최근 특성화고 인력양성 사업으로 규모 있는 회사들이 공개채용을 했는데, 동우가 지원했던 곳들은 모두 경쟁이 치열했다. 실망이 컸지만 동우는 의연한 태도를 보였다. 멘토선생님이 걱정하실까봐 “기업들이 자신의 진가를 못 알아본다”며 괜한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제가 부족한 걸 알게 돼서 다행이라 생각해요. 만일 한 번에 합격했으면 분명 자만했을 거예요. 해병대 체험 때 외쳤던 구호가 ‘안 되면 될 때까지!’였는데, 취업도 그런 정신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요?”

멘토선생님은 동우의 이런 ‘도전정신’과 ‘효성’이 앞으로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될 거라고 말했다. 예의바르고 배려심이 깊은 성격은 어디서나 환영받을 것이고, 강인한 도전정신은 사회생활을 하는데 꼭 필요한 근성이기 때문이다. 멘토선생님의 말에 동우는 쑥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선생님과의 헤어짐이 아쉬운 기색이었다.

“선생님과 학교 안에서 만나지 못하는 게 제일 서운해요. 그렇지만 사회에 나가서도 선생님을 평생 멘토로 생각할 거예요.”

두 사람은 3년간 같은 꿈을 꿨다. 멘티인 동우가 잘되는 것, 동우가 건강하게 성장해 사회의 일원으로 즐겁게 사는 것이 두 사람의 꿈이었다. 동우는 선생님의 멘토링을 통해 인내가 가져다주는 가치가 뭔지, 한계를 뛰어넘는 노력은 왜 필요한지, 실패가 주는 교훈을 어떻게 성공을 위한 발판으로 삼을 수 있을지를 배웠다고 고백했다. 멘토선생님은 그런 동우가 그저 대견스럽다며 연신 눈시울을 붉혔다.

동우는 요즘 열심히 면접을 보고 있다. 정말 사회인이 되고 있는 모양이다. 멘토선생님은 얼마 안 있으면 희소식을 듣게 될 거라며 확신하는 듯 말했다. 며칠 전에 있었던 대기업 2차 면접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멘토선생님은 사회에 나갈 동우에게 이것만 기억하라며 당부했다. “동우야, 실패해도 괜찮아, 너는 지금부터가 시작이야! 그리고 인생은 평생 고쳐나가는 과정이란다.”

  • PREV
  •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