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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가 재단을 꿈★꾸게 할 차례입니다 / 고명신(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꿈장학생 시절 명신이의 꿈은 국제 변호사였다. 이유는 딱 하나, 오래 전 명신이의 가족처럼 힘없는 사람들을 돕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명신이의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대학생으로, 또 장학생으로 여러 경험을 쌓으면서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디서든 자기 소신을 지키며 사는 것이 더욱 어렵고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유에서다. 체게바라의 명언을 논하며 국제 변호사가 될 거라던 명신이는 지금 정의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비전을 품고 있다.

비현실적인 꿈을 꾸는 현실주의자가 되라

명신이가 대학생활에서 가장 잘한 일은 숱한 경험과 실수들이다. 애어른 같은 대답이긴 하지만 앞으로의 명신이가 더 기대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만큼 열심히 살았다는 의미이기도 해서다.

“비장한 각오로 대학을 왔는데, 신입생 때는 줄곧 노는 데 빠져 있었어요. 고등학교 때는 어려운 상황 때문에 한참 공부에 불이 붙어 있었는데, 대학에 오니까 이런 저런 활동을 하면서 친구들하고 어울리는 것도 재미있고 신세계가 따로 없더라고요. 그러다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을 했을 때는 저도 다른 친구들처럼 불안해졌어요. 자꾸 현실과 타협하고 싶더라고요, 꿈보다는 안정된 길을 찾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요.”

리더육성 장학사업Ⅰ명신이가 대학 4년 동안 가장 많이 떠올렸던 단어는 ‘현실’이었다. 기본적으로 서너 개 이상의 외국어에 능통한 동기들이나, 막연하게나마 토익, 토플을 준비하는 친구들, 모든 준비는 끝났지만 일할 곳이 없어 몇 년째 4학년 취준생으로 남아 있는 선배들, 그것도 불안해 고시를 준비하는 선배들을 보면 명신이 자신도 그와 다를 바가 없는 처지임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꿈장학생 시절엔 제 꿈에 대해 굉장히 당당했어요. 장학금 신청서나 면접관들 앞에서도 ‘내 적성은 법무다. 세계문화나 역사에도 관심이 많으니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국제 변호사가 되겠다’고 자신있게 말했고요. 로스쿨을 졸업하고 국제기구 초급전문가를 거쳐서 국제사법재판소나 국제형사 재판소에서 일하면 되겠다는 목표로 열심히 공부했죠. ‘비현실적인 꿈을 꾸는 현실주의자가 되라’는 체게바라의 명언을 떠올리면서요(웃음). 어린 나이에 법정 소송 같은 힘든 일을 극복하고 나니까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의욕이 충만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막상 대학에 와보니까 웬걸요? 그제야 아, 내가 뭘 몰라서 용감했구나 싶었죠.”

법과 세계사가 만나면 ‘세계 법률가’

명신이 아버지는 명신이가 아홉 살 때 돌아가셨다. 갑작스런 심장발작이 원인이었다. 명신이가 국제 변호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그맘때의 일이다. 명신이네 가족이 잘 알고 지냈던 지인과 법정 분쟁이 있었는데, 그들은 아무리 결백을 주장해도 믿어주지 않았다. 그 사건을 계기로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희로애락을 같이 나눴던 사람들도 하나 둘 등을 돌렸다. 다행히 오랜 싸움 끝에 명신이네 가족의 억울함은 증명됐다. 하지만 명신이와 가족들은 믿었던 사람들에 대한 불신과 원망으로 한동안 세상을 등지며 살았다.

리더육성 장학사업Ⅰ그런 명신이에게 살아갈 힘을 준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이신 꿈장학 멘토 강정남 선생님이다. 강정남 선생님은 책상에 앉아 무조건 악으로 깡으로 공부하는 명신이가 자꾸 마음에 걸렸고, 방법을 찾던 중 삼성꿈장학재단을 알게 됐다. 그때부터 강 선생님은 명신이의 따뜻한 멘토가 돼주셨다. 명신이는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 자신이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상상도 안 된다며 지난날을 떠올렸다.

“어머니가 혼자 일을 하시니까 항상 급식비나 기숙사비를 걱정하는 것이 일이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공부밖에 없더라고요. 가정형편이 어려운 제가 오기로 공부하는 모습을 지켜보신 담임 선생님께서 손수 재단을 찾아 알려주시고 멘토가 돼주셨던 것 같아요. 제가 국제기구 법률가가 되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실은 선생님 영향이 커요. 담임 선생님 과목이 세계사였거든요. 검사에 세계사를 접목하니까 국제 변호사가 딱 떠오르더라고요.”

사람을 알아야 사회도 법도 ‘잘’ 지키죠!

명신이는 최근 심리학 공부에 푹 빠졌다. 심리학을 통해 매체가 읽어주는 세상이 아닌, 오롯이 자신만의 시각으로 인간과 사회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유 시간이 생기면 인문학 초청 강연도 자주 들으러 다니는 편이다. 법도 정치도 외교도 결국엔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정직한 판단을 위해서는 객관적인 시각도 개인적인 신념도 점검해봐야 하는 까닭이다.

“어떤 일을 하든지 최대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을 많이 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학생회에도 참여하고, 전국경제인연합에 속하는 CEO에게 멘토링을 받아보기도 했어요. 밴드 동아리에 들어가서 개성 넘치는 친구들과도 어울려보고요. 그냥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했거든요. 어떤 일이든 자기가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면 포용력과 이해력이 좁을 수밖에 없잖아요. 기회가 주어지는 한 뭐든 해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리더육성 장학사업Ⅰ

명신이는 달콤했지만 세상 죽을 것처럼 아팠던 연애도 해봤다고 털어놨다. 덕분에 누군가를 사랑하고 포용하는 일은 위대하지만 쉽지 않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고 했다. 이별의 아픔을 잊고자 군 제대 후에는 인도 여행을 다녀왔다. 평소 당연하게 여겼던 모든 것들이 그곳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문화라는 게 신기했다.

또한 재단 지원으로 다녀왔던 캄보디아 봉사활동은 명신이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재난에 대해 고민하게 됐고, 정치사상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두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명신이가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킬링필드 대학살 유적지의 모습이었다. 체제의 차이가 불러온 결과는 어마어마했다. 고단하기 짝이 없는 캄보디아 사람들의 삶의 현장을 보면서 명신이는 자신이 법조인이 되든 안 되든 모든 일은 약자 편에서 생각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명신이가 봉사활동에 참여했던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재단에 소속된 다른 친구들을 사귀고 싶어서였다.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지, 자신이 잘하고 있는 것인지 점검하고 싶었다. 이런 생각은 명신이가 1학년 때 참여한 차세대 리더 프로그램의 영향이 컸다. 적게는 한 달에 한 번, 많게는 일주일에 한 번씩 모였던 장학생들은 각자 자기 꿈이 뭔지 이야기를 나누고, 직접 전문가 멘토를 초청해 강연을 듣기도 했다. 비록 새내기 신입생들이 뭉쳤지만 뭐든 자기들 스스로 해보려고 했던 과정들이 명신이를 신나게 했다.

정의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

명신이는 요즘 로스쿨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국제 변호사가 목표이지만 꼭 국제 변호사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은 아니다. 지금껏 해온 공부와 경험들이 바탕이 된다면 어떤 현장에서든 살아남을 용기가 있기 때문이다. 명신이는 한치 앞을 모르는 게 세상이니 중요한 것은 ‘직업’이 아니라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자신이 어디에 있든 그곳을 정의롭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 본질적인 비전이라고 말했다.

“제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세상은 배울 것 투성이더라고요. 학교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제가 보고, 듣고, 해보고 싶은 것들을 맘껏 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대학생활은 사회로 가는 연습의 장이 아닐까 해요. 실수를 해도 괜찮은 때라는 게 큰 메리트고요. 물론 제가 재단의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에 비해 더 쉽게 여러 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것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재단을 통해 누린 많은 혜택과 깨우침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 앞으로도 뭐든 치열하게 배워갈 생각이고요.”

명신이는 벌써 8년째 재단과 함께 꿈을 꾸고 있다. 어릴 적 겪었던 어려움들은 명신이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좋은 멘토와 재단을 만나게 해준 고마운 가시이기도 하다. 재단과의 기쁜 이별을 앞두고 명신이는 “이제는 제가 삼성꿈장학재단을 꿈꾸게 할 차례”라며 기특한 소리를 했다.

8년 전의 명신이가 불 속에서 달궈지고 있는 쇳덩이 같았다면, 지금의 명신이는 경험이라는 망치질로 더욱 견고해진 그릇이 된 듯했다. 그리고 명신이라는 그릇에는 무엇을 담든지 분명 바르고 따뜻할 거라는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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