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zine vol.55July 2017 삼성꿈장학재단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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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듯 함께 걷는 멘토링, 세상의 꿈에 눈뜨는 시간 양미경 선생님 김천여자중학교(2013 ~ 2017년 멘토) / 김하늘 김천여자고등학교 2학년(2013 ~ 2017년 꿈장학생) 양미경 선생님. 김하늘

여행하듯 함께 걷는 멘토링,
세상의 꿈에 눈뜨는 시간
양미경 선생님(2013년 ~ 2017년 멘토)
김하늘(2013년 ~ 2017년 꿈장학생)

친해지려면 함께 여행을 떠나보라는 말처럼, 세 번의 여행을 함께한 하늘이와 양미경 선생님은 이제 눈만 봐도 통하는 ‘소울 메이트(soul mate)’가 되었다. 선생님보다 하늘이 키가 조금 더 컸고, 하늘이보다 선생님이 훨씬 더 많은 세상을 봐왔지만, 두 사람은 이제 꼭 닮은 표정으로 웃고 똑같은 속도로 걷는다. 함께 걷고 같이 낯선 길을 헤맸던 그 낮과 밤의 추억 때문이다. 하늘이는 이제 낯선 곳을 헤매도 두렵지 않고, 어려운 일이 닥칠까봐 미리 겁내지도 않는다.
“하늘아, 우리 같이 걸을까.” 손 내밀어줄 멘토선생님이 항상 함께 있을 테니까.

멘토선생님에게 ‘처음처럼’ 다가온 하늘이

하늘이가 중학교 1학년이던 2013년 어느 봄날, 하늘이가 양미경 선생님을 찾아왔다. 한참을 망설이며 하늘이가 선생님 앞에 내민 건 삼성꿈장학재단 꿈장학생 모집 공고문이었다. 선생님이 아이들을 아껴주시는 모습을 봐온 터라, 선생님이라면 꼭 멘토가 되어주실 것 같았기 때문에 낸 용기였다. 오랫동안 투병 중인 아버지나 홀로 농사를 지어 가족생계를 지탱하는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밝게 꿈꾸는 딸이 되고 싶었다. 자신이 건강하게 꿈꾸며 살아가는 ‘해피 바이러스’가 되면 부모님도 언니도 지금보다 더 웃으며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양미경 선생님. 김하늘

선생님은 하늘이가 너무 밝은 아이여서 처음엔 하늘이를 둘러싼 환경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이 아이가 자신이 꼭 품어야 하는 소중한 인연이라는 걸 직감했다. 문경 탄광촌에서 처음 교직 생활을 시작했던 80년대부터 지금까지 선생님은 자신의 품에 들어온 아이들을 하나하나 화분을 가꾸듯 정성들여 가르치고 눈을 맞춰왔다. 그렇게 교사로 40여 년을 근무해오면서도, 어떤 일을 판단할 땐 항상 교사로서 첫 발을 뗐던 탄광촌의 기억을 떠올렸다. 어려운 가정환경에도 꿋꿋하게 공부하던 탄광촌의 아이들, 그리고 설렘과 기대를 가득 안고 교단에 서서 모든 열정을 아낌없이 발산하던 시절.

양미경 선생님은 하늘이를 보면서 초임 교사 시절을 떠올렸다. 하늘이를 통해 다시 그 때의 마음으로 되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꿈 많고 밝은 하늘이와 선생님이 꼭 닮은 눈으로 서로를 응시했을 때, 어쩌면 우주가 움직였을 수도 있고 별 하나가 태어났을 수도 있다. 어떤 만남은 운명을 바꾼다는데, 이들의 만남이 꼭 그러했다.

“장학생이 되면서 자신감을 얻고 마음껏 꿈을 꾸게 됐어요”

김하늘 처음 신청서를 낼 때 중학교 1학년이던 하늘이는 아직 어렸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일에는 서투를 수밖에 없었다. 아픈 아버지, 홀로 농사짓는 어머니, 모든 걸 혼자 해내야 하는 자신의 상황을 어떻게 글로 표현해야 좋을지 고민스러웠다. 겨우겨우 칸만 채워 신청서를 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선정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나 기뻤다. 스스로 노력해 무언가를 얻은 최초의 성취였고, 진심 어린 마음으로 임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멘토선생님도 꿈장학생 선정 결과 발표를 기다리며 마음 졸이긴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마침내 장학생으로 선정되자 하늘이가 꿈을 발견하고 그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고자 구체적인 멘토링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하늘이가 막 싹을 틔우려하고 있다는 것을 멘토선생님은 알고 있었다. 선생님이 교실에서 키우는 수많은 화분들처럼 멘토링도 분갈이를 해주고 물과 거름을 주면서 하나하나 정성껏 기다려주고 돌봐주는 과정이 아닐까.

“하늘아, 너는 꿈이 뭐니?” 멘토선생님이 물었을 때 중학교 1학년 하늘이가 대답했다. “저는 가수가 될 거예요.” 선생님은 하늘이가 무슨 꿈을 꾸든, 설령 그 꿈이 설익고 어설프더라도 지켜봐주고 싶었다. 만약 꿈을 찾아가며 헤맨다면 그 길을 함께 걸으며 고민해주자고, 하늘이에게 ‘내 편’이 되어주자고, 그렇게 친구처럼 눈 맞춰주는 멘토가 되리라 다짐했다.

하늘이의 꿈을 키워주기 위해 시작한 ‘사제동행’

양미경 선생님. 김하늘 어떻게 하늘이의 꿈을 자라게 할까, 멘토선생님은 장학재단이 지원하는 ‘사제동행’ 프로그램을 활용해 여행을 가기로 결심했다. 하늘이는 아직 김천을 벗어나 본 적이 없었고, 부모님의 손을 잡고 넓은 세상을 둘러볼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다. 하늘이가 진짜 자기 꿈을 찾고, 그 꿈을 위해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 알려주려면 그 세계를 직접 보여주는 게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2014년 첫 여행이 시작되었다. 첫 여행지는 서울이었다. 낮에는 대학교를 탐방하고, 밤에는 시티투어를 한 뒤 한옥 게스트하우스에서 숙박을 했다. 다음날 오전엔 경복궁을, 오후에는 예술의 전당에서 뮤지컬을 보는, 빽빽한 일정이었다. 특히 ‘브로드웨이 42번가’ 뮤지컬 관람은 가수가 되고자 하는 하늘이를 위해 특별히 마련한 기회였다. 가수로 화려하게 성장해가는 주인공의 성장기를 다룬 공연은 하늘이에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여행은 사실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희망 대학교를 찾으러 종일 헤매 다녔고, 멋진 서울 야경을 기대하며 시티투어 버스를 탔지만 하필 에너지 절약 캠페인으로 소등한 곳이 많아 어둑한 곳이 많았다. 늦은 저녁 숙소까지 걸어가기로 했다가 길을 잃어버리기도 했고, 숙소는 옆방과 방음이 안 되어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계획과는 무관하게, 헤매고 또 헤매던 시간이었다. 멘토선생님은 여행을 망친 것 같아 속상했지만, 하늘이는 웬일인지 종일 싱글벙글이었다.

“제겐 모든 게 처음이었는데, 그 처음을 멘토선생님과 함께해서 너무 좋았어요. 대학교를 구경한 것도, 대학생들이 먹는 학식을 먹어본 것도, 2층 버스를 타거나 그렇게 큰 규모의 뮤지컬을 보는 것도 다 처음이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좋았던 건, 선생님이 저를 사랑하고 걱정하고 보살펴주신 거예요. 손잡고 같이 걷던 그 길을 잊을 수가 없어요. 선생님이 있어서, 정말 하나도 두렵지 않았어요.”

양미경 선생님. 김하늘

양미경 선생님. 김하늘

멘토선생님은 그 이후 부산의 바다를, 또 경주의 명승지를 여행지로 잡아 제일 유명하고 가장 예쁜 곳을 하늘이와 함께 걸었다. 그때도 어김없이 ‘예상 밖의 사건’이 일어났다. 어쩌면 풍경보다 더 중요했던 건 낯선 상황에서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해결해나갔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두 사람은 그렇게 5년 동안 여름도 겨울도 함께 보냈고, 이제는 속 깊은 얘기를 나누는 친구로서 너무도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하늘이가 꾸는 새로운 꿈, 타인을 위해 일하는 사람

고등학생이 된 후 하늘이는 혼자 많은 것을 해내야 했다. 갑자기 어려워진 교과 공부, 진로 걱정 등으로 너무 큰 신발을 신고 걷는 것처럼 버겁기만 했다. 그때마다 하늘이는 멘토선생님과의 여행을 떠올렸다. 어려움에 직면해도 같이 길을 찾아냈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 좀 헤매도 괜찮고 큰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코 창피한 일이 아니고 늦은 것도 아니라는 것.

그러는 사이 하늘이의 꿈은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는 가수가 아니라, 책임감을 갖고 타인을 돕는 간호사 혹은 제약 개발 연구원으로 바뀌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만약 누군가 조금이라도 빨리 조치했다면, 아버지의 건강도 가족의 생활도 그렇게 악화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멘토선생님과 장학재단처럼 많은 사람이 자신을 사랑해주고 보살펴주었던 따뜻한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돌려주고 싶어서다.

김하늘 그 꿈을 위해 하늘이는 이과 계열로 진학했고, 과외나 사교육의 도움 없이 스스로 공부해 수학과 과학 부문의 대회에서 입상할 정도로 새로운 꿈에 몰두하고 있다. 봉사활동도 열심이다. 아픈 사람들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연습을 해나가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한 달에 한 번 노인장기요양병원에서 꾸준히 봉사를 하다 보니 이젠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이 먼저 “이 학생은 믿을 수 있으니까” 하면서 인정해주신다.

스스로 변화한 모습을 돌아봐도, 하늘이는 너무 신기하다. 만약 장학생이 되지 못했다면, 꿈꿀 시간도 없이 부모님의 짐을 덜고자 고등학교만 마치고 곧바로 사회로 나갈 직업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투병기간 동안 엄마가 병간호를 담당한 탓에 언니와 함께 친척 집에 맡겨지면서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고 원망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마음이 더 커져 나쁜 길로 빠졌을 지도 모른단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다행히 꿈장학생이 되었고 멘토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어쩌면 꿈장학의 가장 큰 혜택은 ‘사랑받는다’는 것 아닐까. 그래서 하늘이는 앞으로 더 열심히 꿈을 향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하면서 활짝 웃었다.

네가 나에게 해주는 보답은 예쁘게 잘 자라는 거란다

양미경 멘토선생님은 ‘사랑을 갖고 노력하면 어떤 아이든 잘 자란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그것을 증명해준 아이가 바로 하늘이였다. ‘선생님은 어떤 것도 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하늘이가 ‘세상에 대해 눈뜨는 시간’을 지지하고 지켜봐주고 싶었다. 꽃 하나가 피어날 때 우주 하나 피어난다고 했던 시구처럼 하늘이의 세상이 열리기를 바랐다.

양미경 선생님. 김하늘

하늘이의 꿈이 가수였을 때도, 간호사로 바뀌어도 변함없이 그 꿈을 가장 지지해준 분은 멘토선생님이었다. 그 이면에는 하늘이가 아버지의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이 처한 환경을 받아들일 만큼 성장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무사히 자랐고, 또 앞으로도 무사히 자라날 하늘이에게 고맙고 아이들이 꾸는 꿈에 버팀목이 되어준 장학재단에 감사하다. 현직 교사로서 손닿지 않는 아이들 마음속의 그늘이 늘 마음에 걸렸는데, 어쩌면 삼성꿈장학재단은 그런 그늘까지도 감싸 안을 만큼 튼튼한 울타리를 갖고 있는 것 같아서다.

하늘이와 멘토선생님, 또 장학재단이 발을 맞춰 지금까지 5년, 그렇게 쭉 함께 걸어왔다. 선생님은 퇴직 후에도 하늘이의 멘토선생님으로 남아 멘토링을 계속하면서 하늘이가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해나가는 걸 지켜볼 계획이다. 멘토선생님과 하늘이에게 어쩌면 바로 이 시간이 인생에서 손에 꼽힐 만큼 행복한 순간인지 모른다. 두 사람의 즐겁고 행복한 에너지가 모여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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