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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순구미 아이들 마음속에 따스한 시와 극을 품다! / 목포 유달지역아동센터(2013~2017 지역형 교육복지사업-공동사업) 목포 유달지역아동센터

다순구미 아이들 마음속에
따스한 시와 극을 품다!
목포 유달지역아동센터
(2013~2017 지역형 교육복지사업·공동사업)

유달산 자락 좁은 골목길 사이로 조각보처럼 다닥다닥 붙은 작은 지붕들, 그 아래는 ‘조금새끼’라 불리는 ‘다순구미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산다. ‘다순구미’란 전라도 사투리로 양지바른 곶을 뜻하고, ‘조금새끼’란 어부들이 조업을 쉬는 기간 동안 잉태한 아이들을 말한다. 하지만 바다에 나갔다 영영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위험한 조업 대신 폐허가 된 구 조선소나 선착장에서 일용 잡부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목포의 구 도심 다순구미는 점차 쇠락의 길을 걷게 됐고, 아이들의 일상도 그만큼 공허해졌다. 그런데 이런 다순구미 마을에 언젠가부터 시(詩)를 읽는 아이들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품은 시는 꿈을 향한 희망가가 되어 가슴 속 깊이 아로새겨진다.

시를 배우고 연극으로 만들어 자신감을 표현하다

“모를 심세 모를 심어 / 와와덜이여(어서들 와요’의 방언, 이하 후소리) / 이모 심어 부모봉양 / 와와덜이여 / 이모 심어 자식 건사 / 와와덜이여 / 한 줄 건너 두 줄이네 / 와와덜이여 / 두 줄 건너 세 줄이네 / 와와덜이여 / 다 되었네 다 되었어 / 와와덜이여”

‘시 속에 연극을 담다’ 수업이 진행 중인 유달지역아동센터의 강의실. 아이들은 오늘 ‘가뭄’에 관한 시를 국악으로 배우고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가는 연극의 주인공이 됐다.
“옛날에는 노래를 부르면서 흥을 돋워 모내기를 했대요. 지금부터 다 함께 노래를 부르면서 모내기를 해볼 건데요, 장구에 맞춰 어깨춤도 춰봅시다.”

시로 문을 연 수업은 금세 연극수업으로 바뀌었다. 강사들이 가져온 보따리를 풀자 못줄과 가짜 모, 두루마기와 두건, 상투 등 다양한 소품들이 쏟아져 나왔고, 바닥에 깐 보자기는 즉석에서 무대가 되어주었다. 아이들은 의상을 하나씩 골라 입고 못줄에 맞춰 모 심는 연기를 하면서 ‘와와덜이요~’라는 후렴구를 따라 불렀다. 한쪽에서는 또 다른 아이들이 새참을 머리에 이고 등장할 채비를 했다. 바구니와 소쿠리, 조롱박 바가지까지 이고 끼고 손에 든 아이들은 모내기 노래가 끝나자 ‘새참이요~’하고 외치면서 무대 안으로 달려왔다. ‘와와덜이요’와 ‘새참이요’ 딱 두 마디로 아이들은 모두 연극배우가 되었다.

목포 유달지역아동센터

목포 유달지역아동센터

이제는 극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시간. 강사들은 간단한 소품을 이용한 인형극을 통해 ‘가뭄은 용이 비를 내려주지 않기 때문’이라는 설정을 알려주고, 용이 비를 내릴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아이들과 논의했다. 아이들은 ‘용을 혼내줘요, 용을 기쁘게 해줘요, 캡사이신 넣은 밥을 줘요. 연기를 마시게 해요.’ 등 손을 번쩍 들고 ‘저요! 저요!’를 외치며 스스럼없이 상상력을 발휘했다. 이 아이디어 중 몇 개를 골라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아이들은 시 공부는 물론, 소품 활용 및 스토리 구성, 연기, 연출까지 자연스럽게 체득해 나갔다. 목포 유달산 근처 구도심에 위치한 KYC푸른꿈, 어깨동무, 은혜, 새움땅 등 5개 지역아동센터 75명의 아이들은 이렇게 ‘시 속에 연극을 담다’ 프로그램을 통해 시를 배우고, 시로 연극을 만들어 스스로를 표현하면서 자신감을 높여나가고 있다.

책 한 권 갖지 못한 아이, 삶을 바꾸는 힘을 길러줄 ‘시’

이들 5개 지역아동센터가 함께 공동사업을 진행하기까지 그 텃밭을 일구고 씨앗을 뿌린 건 유달지역아동센터다. 2013년부터 ‘난타’로 배움터 교육지원사업에 단독으로 참여해 온 배경일 센터장이 그간 쌓아온 경험을 토대로 2015년부터 인근 4개 지역아동센터와 함께 ‘시’를 테마로 공동사업을 준비한 것이다. 배 센터장은 “난타를 통해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자신감을 심어주는 일도 중요하지만, 자기만의 동화책을 단 한 권도 가져본 적이 없는 아이들, 엉덩이를 붙이고 공부해 본 경험이 없는 아이들이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나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독서’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읽기 쉽고 심성도 맑게 해주는 ‘시’가 ‘책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의 손잡이 역할을 해줄 거란 믿음이 있었다.

2017년 배움터 교육지원사업

8개월여 동안 준비과정을 거쳐 지난해 첫 수업을 시작했지만, 사실 ‘시를 주제로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표를 갖고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시는 수업시간에 암기하는 것’이라는 선입관을 떨칠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시작부터 고난도의 시를 배우는 바람에 아이들 역시 ‘공부는 학교에서 만날 하는데 왜 이걸 꼭 해야 돼요?’라고 투덜거리곤 했다. 이에 강사와 협의해 좀 더 다양한 방법으로 시를 즐길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진행해줄 것을 요청하자 수업 분위기가 한층 나아졌다.

강사는 마이크를 들고 와 한 명씩 돌아가며 시를 낭독해보도록 했다. 수줍어하던 아이들은 마이크에서 울리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며 점차 표현력과 자신감을 키워나갔다.
“센터에서 식사를 준비하고 있을 때 아이들의 시 읊는 소리가 낭창낭창 들리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재미있는 시를 배운 날에는 너무 웃긴다며 시를 장난스럽게 막 외우기도 하고요. 어릴 적에 외워둔 시구 하나가 훗날 어른이 돼서도 기억에 남잖아요. 아이의 마음속에 이 시들이 오래도록 울림을 주길 바라요.”

“저 시 발표도 잘했잖아요. 이것도 당연히 할 수 있죠!”

독서 골든벨과 시화를 진행했던 독서캠프에서는 아이들의 또 다른 성장을 엿볼 수 있었다. 소속이 다른 5개 센터 75명의 아이들을 나눠 8개 모둠을 만든 다음 좋아하는 시를 선택해 그림도 그리고 시구도 바꿔 써보는 시간, 기성 시인들의 시와 함께 정연(가명)이가 쓴 시도 ‘좋은 시’로 선택받은 것이다. 아이들도 선생님도 정연이의 시를 기성 시인의 시로 착각할 만큼 완성도가 높았다. 정연이의 별명은 이후 ‘시인’이 됐다. 섬에서 전학와 늘 책만 읽던 아이, 하지만 정작 독후감은 잘 쓰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던 정연이는 시 창작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시인’이라는 별명과 함께 친구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으며 새로운 꿈을 발견했다.

시 낭송 시간에는 지민이(가명)의 재능이 반짝반짝 빛을 냈다. 항상 삐딱한 자세로 앉아 있던 지민이가 모둠 발표에서 ‘콩, 너는 죽었다(김용택)’ 시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멋지게 낭송하자, 선생님은 지민이에게 연말에 시 낭송에 참여해 볼 것을 권했다. ‘제가 할 수 있을까요?’라며 자신 없어 하던 지민이는 시 낭송회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줬고, 이후 지민이는 180도 달라졌다. 이젠 ‘원장 선생님! 저 시 발표도 잘했잖아요! 당연히 이것도 할 수 있죠!’라며 어떤 일이든 당당히 도전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조잘조잘 말문까지 터진 지민이의 변화에 지민이 아빠는 가끔 전화를 걸어 ‘너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오곤 한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이들이 너도나도 휴지를 주워요!

목포 유달지역아동센터

한편, 온 마을과 함께 한 ‘빨간 장갑 데이’는 지역사회와 학교, 배움터 간에 작은 연결고리를 만들어주었다. ‘빨간 장갑 데이’란 쓰레기가 잘 안 잡히는 집게 대신 빨간색 목장갑을 이용한 환경미화활동으로, 유달산과 목포근대역사관, 목포진 역사공원 등 관광자원이 많은 구도심 지역을 함께 둘러보면서 쓰레기도 줍고 간식도 먹는 행사다. 배경일 센터장은 행사를 앞두고 학교나 동 주민센터에 동참해줄 것을 제안했는데, 주민센터 직원들과 학생, 교사까지 모두 나와 줘 ‘진짜 동네잔치’가 되었다. 이후 동 관계자들은 지역아동센터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고, 센터에 필요한 학용품 등을 보내오기도 했다.

‘요즘 아이들 중에 누가 쓰레기를 줍겠어?’라는 생각을 갖기 쉬운데, ‘빨간 장갑 데이’에 참가한 뒤 학생들에게 재미있는 변화가 있었다. 학교에서 천안 독립기념관으로 견학을 갔는데 누군가 시키지 않아도 휴지를 줍기 시작한 것이다. 한 아이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까지도 따라 줍자 담당 교사는 ‘신기하다’며 그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오기도 했다. 이 같은 아이들의 변화에 고무된 학교는 배움터 활동을 적극 지지해주고 있으며, ‘학교 일이 배움터 일이고 배움터 일이 학교 일인 것처럼’ 여기면서 유대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아이들의 자기표현을 북돋는 연극 수업

올해 새롭게 진행 중인 ‘시 속에 연극을 담다’는 ‘시 창작과 낭송’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시를 연극으로 만들어보면서 몸으로 직접 표현해보는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교강사 역량강화 수업과 5회기의 ‘맛보기’ 연극수업을 통해 가능성과 호응도를 체크한 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시 속에 연극을 담는 프로그램은 아이들의 자기표현을 돕는 것 같아요. 상대적으로 위축된 모습이 많이 느껴졌는데 연극을 하면서 바뀌었거든요. 주저하지 않고 자기표현을 해요. 연말에 연합공연을 하기 위해 센터당 4~5명가량을 선발해 연습시킬 예정인데, ‘저요! 저요!’ 하면서 아이들이 서로 참여하겠다고 경쟁을 할 정도로 좋아하고요.”

목포 유달지역아동센터

목포 유달지역아동센터

특히 두드러진 변화를 보인 아이는 3학년 승민(가명)이다. 승민이는 연극수업만 되면 유독 집중력이 높아진다. 평소 학습지 2~3장 푸는 데도 두 시간이 넘게 걸리던 아이가 10회기 수업을 다 마친 뒤 그간 배운 내용을 물어보자 혼자 대답을 독차지할 정도로 놀라운 기억력을 자랑했다. ‘선생님 말씀을 집중해서 듣고 연극도 잘하는 친구를 연합 연극단에 뽑겠다.’는 말에 승민이가 ‘기를 쓰고’ 노력한 것이다. 어깨동무지역아동센터 강경숙 센터장은 “시·연극 수업이 아이들 속에 잠재돼 있던 것들을 뿜어내는 계기가 되어주었다.”며 “공부가 아닌 다른 영역에서 가능성을 찾아낸다는 것, 그런 아이들을 보는 우리의 눈이 새로워졌다는 게 배움터의 성장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은혜지역아동센터 이숙영 센터장은 “지난해 수업 초기에 시행착오를 겪었을 때 잘못된 부분을 방관하지 않고 교강사 모임을 자주 가지면서 조율해 나가다 보니, 올해는 원하는 방향으로 쉽게 수업을 이끌어나갈 수 있었다.”고 했다. KYC푸른꿈지역아동센터 송선희 센터장은 “어린이극 전문예술극단인 ‘아띠’와 협약식을 맺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연극수업 교강사들이 매번 주제에 맞는 교안을 새로 짜고 소품까지 일일이 다 만들어 오는 등 프로그램을 위해 많은 시간을 쏟아주고 있다.”며 “이를 통해 배움터도, 교강사들도 한 단계씩 성장하는 것을 느낀다.”고 전했다.

‘열 일 제쳐두고’ 자주 만나 논의, 함께 성장하는 배움터

5개 배움터들을 끈끈하게 맺어주고, 함께 수업의 질을 높여가는데 가장 큰 힘이 됐던 것은 ‘실무자 회의’와 ‘교강사 역량강화’ 활동이었다. 일주일에 ‘최소한 한 번 이상’은 만난다는 배움터 관계자들은 항상 ‘열 일 제쳐두고’ 모임에 참여한다고 한다. 배경일 센터장은 “역량강화 활동과 회의를 통해 자주 만나서 함께 뛰고 같이 의논하다 보니, 아이디어도 모이고 힘도 더 커진 것 같다.”며 “혼자 했을 때는 힘이 들기도 했고, 또 저희만 혜택을 누린다는 생각에 죄송스러운 마음도 들었는데 이렇게 같이 가니까 백배 나은 것 같다.”고 말했다.

목포 유달지역아동센터

배움터 실무자들은 불과 하루 전에도 만나, 연극 나눔 발표회에 대해 논의했다. 지난해에는 연말에 급급하게 장소를 물색해 인근의 노인정에서 시낭송회를 했는데, 올해는 미리 지역 내 노인복지관 등을 물색해 연극 나눔 발표회 공연을 예약해 놓고, 지역민들에게도 충분히 홍보하자는 계획이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역시 발표회에서 떡도 해가고 과일도 싸가서 즐겁고 훈훈한 동네잔치로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싹이 노랗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아이들의 싹은 항상 푸르다. 푸릇푸릇해야 할 새싹이 노란 건 충분한 햇빛과 영양분을 받지 못하고 자랐기 때문이다. 빨간 볼을 가진 바닷가 양지바른 곳, 다순구미 마을 아이들은 마음 언저리를 맴돌던 희망의 노래를 시로 만들고, 그 시를 다시 연극으로 만들어 무대에 올릴 것이다. 화려한 조명이 빛나는 무대 위에서 자기 자신을 마음껏 발산하는 날, 아이들은 한층 더 짙푸른 꿈의 광합성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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